2016-하계 필리핀 해외봉사 활동수기(최은수)

작성자
참사람봉사단
작성일
2016-09-13 10:25
조회
237
동참 9기 가족이 되다.

처음으로 동참 9기를 알게 된 건 5월 달이었다. 같은 과에서 제일 친한 지완이의 권유로 동참 9기에 지원하게 되었고, 단 한 번도 동참 9기에 지원했다는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5월부터 해외봉사단원이 되기 위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여러 세미나를 들었고,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사전 MT 및 봉사활동에 참여하였다. 동참은 하나가 되어야 해외봉사를 할 수 있다는 과장님의 말씀을 성실히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고 확신하게 된 건 종강을 하고 나서부터 해외봉사를 가기 전까지 매일 모여서 문화교류연습과 교육봉사연습을 했을 때였다.

다들 일정이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모두 동참 연습을 1순위로 잡고 연습에 임했을 때 드디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춤 연습을 위해 모였을 때 서로에 대해 챙겨주고 함께 있을 때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필리핀으로 떠났을 때 다 같이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봉사를 하고 오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세부공항에 내렸을 때 한국보다 습한 날씨에 정말 숨이 막혀왔다. 세부공항에서 우리가 가져온 봉사물품에 세금을 물린다는 말이 있었기에 3명씩 조를 짜서 나눠서 들어갔지만 결국 세금을 물리려고 온 직원들에게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미 많은 준비를 해놨었고, 우리가 숙소로 정한 아가피아 국제학교의 이사장님 따님께서 오셔서 도와주셔서 잘 넘어갈 수 있었다. 공항에서 1시간 넘게 지체한 후 새벽버스를 타고 4시간 넘게 이동해서 우리의 숙소인 아가피아 국제 학교에 도착했다.

아가피아에서 처음으로 영원한 친구인 실리만 대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서로 인사만 하고 헤어졌지만 오랫동안 만난 친구랑 헤어지는 것처럼 다들 아쉬움이 남았었다. 아가피아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처음으로 우리가 한국에서 준비한 봉사활동을 하는 날이 되었다. 봉사 첫날부터 사전에 공지를 받고 준비한 교육순서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변수가 많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갑작스럽게 바뀌다 보니 모두가 당황했다. 그래도 교육조장님의 리더십으로 잘 넘어갈 수 있었다.

실리만 학생들과 함께 교육봉사와 노력봉사를 하면서 영어를 사용해야 했지만 서툴게 사용하는 영어가 오히려 한국어보다 더 정감 있게 느껴졌다. 노력봉사는 화장실을 짓기 위한 흙을 나르고 시멘트를 만들고 천장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대부분 처음으로 하는 일이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임했다. 그리고 필리핀의 뙤약볕에서의 노력봉사는 정말 힘들었지만 동참 9기가 있어서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봉사가 끝난 후 저녁을 먹고 평가회와 문화교류봉사를 준비하기 위해 2층 강당에 모였다. 다들 지친 기색이 보였지만 한국에서 열심히 준비한 만큼 필리핀에서도 열심히 문화교류봉사를 준비했고 샤워를 하고 모였지만 춤추고 땀이 나서 또 샤워를 해야만 했다. 우리의 하루일과는 매번 이런 패턴으로 이루어졌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해외봉사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하겠지만 그 안에서 서로 의지하고 챙겨주며 생활하는 것, 그리고 순수한 필리핀 학생들과 사람들을 보면 절대로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동참 9기 사람들에게 매번 감사함을 느꼈지만 가장 감사하다고 느꼈을 때는 로빈슨 백화점에서 공연을 마치고 나서였다. 해외봉사 오기 전부터 허리디스크가 있었지만 치료를 받는 중이라서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다. 해외봉사 1주 동안은 괜찮았지만 2주째 되는 날 허리가 급격히 안 좋아져서 문화교류 봉사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었다. 문화교류 당일 날이 되었을 때 오랫동안 걸어서 그런지 공연하기 전부터 다리가 저리면서 허리가 아파왔지만 지금까지 이 날만을 위해 준비해 왔기에 아픈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서 실리만 대학교 친구들을 보니 힘이 났고, 단장님, 과장님 그리고 응원하고 있는 동참사람들을 보니 더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무대를 끝마친 후에 갑자기 통증이 심해졌고, 무대 뒤에서 산이형과 승민이형 그리고 나머지 동참 사람들이 내려와 마사지를 해주고 부채질을 해주었을 때 너무 감동이었다. 지금은 동참 사람들이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배려해줘서 빨리 나을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필리핀에서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다수였었다. 우리 모두가 원해서였는지 그 바람이 이루어졌었다. 단체로 여권을 보홀에 남겨둔 채 세부로 넘어와서 한국으로 출발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과장님의 친구 분의 집에서 하루를 더 보내게 되었는데, 26명의 비행기 표를 한번에 구할 수가 없어서 20명만 먼저 구하고 6명을 따로 구했다. 마지막 문화탐방을 세부의 백화점에서 정말 재밌게 하고 6명이 먼저 출발하게 되었다. 필리핀에 동참 인원들을 남겨두고 6명이서 먼저 왔는데 떨어져있는 짧은 시간마저 너무 보고 싶었고, 그리웠었다. 새벽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먼저 도착했을 때 다들 나머지 인원들이 탄 비행기가 세부에서 잘 출발했는지 시간표를 보고 있었고, 수강신청을 해야 하는 사람들과 허리가 아픈 나는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출발했다. 지금 제일 후회되는 것은 나중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동참 9기 사람들이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 나에게는 동참 9기 사람들이 누구보다 소중하고 마치 진짜 가족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동참 9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