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하계 필리핀 해외봉사 활동수기(조수민)

작성자
참사람봉사단
작성일
2016-09-13 10:24
조회
234
감동 범벅 필리핀 

3학년이 되었지만, 아직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지 나조차도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때, 막연히 어른이 된다면 꼭 한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해외봉사가 떠올랐다. 운 좋게 그 시기에 해외봉사 단원을 모집했고 내 어렸을 적 오랜 꿈이었던 해외봉사를 가게 되었다.

해외봉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다 준비해야했다. 우리 팀이 입을 옷, 가서 할 봉사활동, 짐 패킹까지 하나하나 우리 손으로 직접 했다.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 학교에 나왔지만,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 우리 팀과 함께 준비할 수 있어서 즐거웠고 필리핀에서의 봉사가 너무도 기대되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필리핀으로 향했다.

노력봉사 중 화장실 주변의 쓰레기를 주웠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깔랍누간 초등학교의 높게 쌓여있는 쓰레기를 며칠에 걸쳐 모두 정리했다. 그 많던 쓰레기를 다 정리했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리는 장시간 땡볕에 그대로 노출된 채 쭈그려 앉아서 정말 많은 양의 쓰레기를 계속해서 주웠는데 이 때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앞으로 이보다 더 힘든 것은 없을 것이라고 느꼈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한국에 가서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녹초가 되어 쉬고 있었을 때, 이사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은 충격이었다. 우리와 함께 일한 인부들의 일당이 고작 5천원 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함께 일했기 때문에 그들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노동에 대한 합리적인 대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마져도 일거리가 없어 사람들은 일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필리핀의 상황은 어려웠다.

교육봉사를 하면서 힘이 들었지만 행복하게 봉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깔랍누간 초등학교와 아가피아 국제학교에서 학생들의 맑고 순수한 눈망울은 나의 마음까지 깨끗하게 해주었다. 교육봉사를 하면서 정말 놀랐던 것은 아이들의 정직함이었다. 아이들은 예쁘고 다양한 학용품을 너무도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을 꾹 참고, 먼저 다가와 처음 모습 그대로 다 쓴 색연필을 돌려주는 아이들을 보며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 누구보다 학용품을 가지고 싶었을 텐데, 누구 하나 욕심 부리지 않고 다시 돌려주는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예뻤다.

빈민촌에 가서 쓰레기를 주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은 처음 본 우리를 따라다니며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솔선수범하며 쓰레기를 주웠다. 또한 내가 마을에 있는 큰 개들을 무서워하자 그 작은 아이가 나의 손을 잡으며 보호해주었다. 우리는 낯선 이방인일 뿐인데, 진심으로 대해주고 따르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지금껏 한국에서 살면서 너무도 당연해서 그 소중함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매우 소중한 것이었음을 필리핀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곳 주민들은 정수된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었고, 밥을 굶는 경우도 허다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옷은 꾸미기 위한 용도가 아닌 가리기 위한 용도였다.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위험한 부지에서 신발도 없이 맨발로 다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내가 정말 놀랐던 것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지만 행복한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우리처럼 음악을 사랑했고, 가족을 챙겼으며, 친구들과 장난치는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참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나는 이들보다도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살지만, 매사에 불만을 갖고 결코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간에 내가 얼마나 복에 겨운 소리를 하며 살았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필리핀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을 모두 주고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직접 봉사를 하면서 느낀 것도 물론 많았지만, 함께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낀 게 참 많았다. 나는 이제껏 살면서 땡볕에 장시간 봉사를 한 경험이 없었다. 나 스스로를 감당하기에도 벅차서 누굴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팀원들은 달랐다. 함께 화장실을 지었던 현지 인부들을 챙겼고, 함께 봉사를 했던 실리만 학교 친구들을 챙겼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이 고되고 힘듦에도 불구하고 서로서로를 배려하며 팀원들에게 좀 더 쉬라는 말을 건네는 모습은 ‘감동 범벅’이었다. 누구하나 불평, 불만 하지 않고 웃으며 봉사에 임하는 팀원들의 모습에 정말 눈물이 났다. 첫 날 평가회 시간에 몇몇 팀원들이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교류봉사만이 남아있었다. 많은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로빈슨 백화점에서의 공연이다. 사실 나는 춤을 잘 추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특히 우리 ‘미스터츄팀’은 춤을 잘 추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다. 어떤 팀보다도 많은 연습을 했지만, 연습에 비해 항상 성과가 미미했다. 그래서 딱히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로빈슨 백화점 공연의 반응은 뜨거웠다. ‘미스터츄’를 큰소리로 외쳐주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환호성을 들으며 굉장히 놀랐다. 그간의 우리의 고생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행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팀원들과 함께 공연 자체를 즐겼다. 평생 결코 느껴보지 못할 열광과 환호 속에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마치 우리가 연예인이 된 것 같았고, 함께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더 기뻤다. 언어와 국적이 달라도 음악으로 하나 되었던 로빈슨 백화점의 공연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만약 필리핀에 가지 않았더라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많은 것들을 지금 이 시기에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해외봉사는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해외봉사를 통해 너무도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게 제일 큰 행운이었다. 함께 해외봉사를 하면서 함께 웃고 울었던 우리의 모습들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길었다면 길수도 짧았다면 짧을 수도 있었던 2주 동안 너무너무 행복했다.